요즘 항공권 시장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전쟁터다. 그동안 항공권 판매의 주축이었던 국내 여행사들 간 경쟁을 넘어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OTA들까지 본격적으로 가세한 가운데 서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OTA들은 특히 혼합 발권에서 유리한 구조로 항공권을 판매하고 있다. 이는 항공사들이 여행사에 제공하는 커미션, 볼륨 인센티브(VI) 제도를 각 국가‧도시‧노선별로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A항공사가 한국에서는 0% 커미션 제도를 고수할지언정 판매 촉진이 필요한 베트남에서는 1%라도 커미션을 준다거나, 미국에서는 신규 취항을 기념해 더블 커미션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해외 곳곳에 지사를 둔 글로벌 OTA들은 각 지사에서 가진 가격 경쟁력이 높은 항공권을 조합해 국내 여행사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모습이다. 실제 7월3일 네이버 항공권에서 8월24일~28일 일정으로 인천-나트랑 왕복 항공권을 검색한 결과 최저가는 31만2,537원으로 가는 편은 비엣젯항공을 이용하고 돌아오는 편은 에어부산을 이용하는 아고다의 혼합 발권 항공권이었다. 이어 트립닷컴이 37만5,900원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국내 여행사들도 동일한 혼합 발권 항공권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50만원대로 차이가 상당했다. 국내 여행사들이 “애초에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 구조”라고 토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 여행사들은 ‘똑딱 노선’에서 카드사 할인이나 자체 프로모션 등으로 겨우 실적을 방어하고 있지만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미 경쟁이 치열한데다 최근 항공권 비교 검색 플랫폼에서 아고다, 트립닷컴 등 글로벌 OTA의 요금이 상단에 오르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항공권 시장마저 글로벌 OTA에게 주도권을 뺏기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네이버에 대한 원성도 높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업체별 항공권 가격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OTA들의 판매 방식은 국내 기업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방식인데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며 “국내 항공권 유통 시장에서 네이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우리나라 기업이 불리한 경쟁에 처하지 않도록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여행사들은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 네이버 측에도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네이버 측에서는 글로벌 OTA들의 판매 방식이 불공정하다거나 불법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제재할 명분 또한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BSP 여행사 실적 순위에서 상위 10권 안에 진입한 글로벌 OTA로는 트립닷컴 코리아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여행업계에서는 트립닷컴 코리아로 집계되지 않는 실적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방식으로 혼합 발권이 이뤄질 경우 결제는 국내에서 이뤄지더라도 해외발 항공권의 실적은 해외 BSP 코드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항공사들도 실적이 증가하고 있는 글로벌 OTA에게 좋은 요금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견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떤 쪽이든 너무 한쪽으로 판매가 치우치면 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갈 수도 있어서다.
한편 네이버 항공권에는 올해 초 쏘카가 신규 공급사로 입점하면서 국내선 항공권 시장에도 불이 붙었다. 후발주자로 국내선 항공권 판매에 뛰어든 쏘카가 발권수수료(편도당 1,000원)를 제외한 요금으로 최상단에 노출되자, 이에 동참하는 일부 업체들도 생기고 있다. 발권수수료는 국내 여행사들이 최소한의 수익을 보전하고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고자 도입해 정착시킨 제도지만 신규 업체들이 입점할 때마다 발권수수료를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도 해묵은 문제로 꼽힌다.